신용정보기법의 운용핵심은 대상자가 세상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게 하는 것이다.
신용정보기법은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한다.
대상자가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나..
대상자가 세상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해야 범죄를 저지르거나
나쁜 마음이라도 먹어야 신용정보기법이 효과가 있다.
무슨 말인가하면 과대망상적 청각과민과 따라다님의 강박은
대상자를 상처입은 짐승으로 만든다.
상처입은 짐승은 자신의 주변을 물어떴는다.
대상자가 대부분 층간 소음의 살인자나 묻지마 폭행의 현행범이 된 이유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야 할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나..
역설적이게도 좀더 시간이 걸린다.
따라다님의 소음발생과 강박이 그 대상자에게 이웃사랑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너가 얼마나 견딜수 있나" 하며 계속 사람들을 바꿔가며 따라다님의 소음과
강박을 만든다. 너를 망가뜨려 장애인나 범죄자 아니면 사망케 하겠다는 것이다.
방송과 뉴스로 신용정보기법을 활용하는 것은 고전이다.
또한 종교계에 신용정보기법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운용한 것도 고전이다.
대상자가 청각과민과 강박으로 망가져 폭력과 분노의 욕설 또는
미친짓을 전제로 행동할때 신용정보기법을 행동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으로 남는다.
대상자가 종교적 신앙심으로 견딘다면 그종교의 신자로 이루어진 여러 팀을
만들면 된다. 누구나 돈은 원한다. 정상적 기관이나 작은 일의 참여로 지급받으면
언제든 OK가 되는 것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하느님앞에 언제나 부족하다.
사회적 위치도 평범하다. 전직 경찰로 명퇴하였다.
도대체 그런 나를 왜 그렇게 범죄자로 만들지 못하여 안달인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과대망상적 청각과민의 과정을 설명하였고 따라다님의 강박을
수없이 말하였다. 아마 자신들의 치부를 너무나 잘알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이 신용정보기법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지 5년동안 겪디고 견딘
내가 범죄자가 되었거나 죽었다면 알지 못하였을 일이다.
한가지 고백하자면 청각과민증을 겪지않은 신부님께 고해성사로 고백하였고
고통을 말하였으나 그고통이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신부님도 그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결국 나의 판단이 옳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즉 과대망상의 청각과민 피해자가 자신의 어머니도 죽이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사실의 개연성을 전혀 이해 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신용정보기법의 살인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나
자신들이 한 행위가 과대망상의 청각과민을 만들고 결국 정신적 문제로
최악의 경우 자신을 보호하든 어머니를 죽이며 끝이났다는 사실을
신용정보기법은 숨기고 싶은 특별한 일로 인식하는 것이다.
먼저 사람들이 청각과민증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글로 표현 하자면 젓가락과 밥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뼈를 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랍나...
나는 경험하였고 기적 같이 벗어났다.
어떻게 벗어났는지 솔직히 모른다..
아직도 생각한다. 청각과민증을 정확히 이해하고 아픔을 아는 자가 있을까..
그리고 살인행위를 한 층간소음의 살인자가 왜 그렇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살인자들은 타인을 죽이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유영철같은 자를 봐라..
그런데 자살로 끝이난다.. 그사람은 평범한 보통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내가 신용정보기법의 사악함을 수없이 말하게 된 이유가 된다..
사악함은 기간에 있다고 지명하였다. 사람들을 아무리 바꾸고 신앙인을
내세워도 기간의 살인 행위 즉 살인자들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