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주교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노 이다. 세례명을 정할때 아우구스티노와 여호수아를
고민하다가 아우구스티노로 하였다. 5년의 세월은 여호수아가 나에게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여호수아 라 말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불리기도 하였다.
교회법은 한번정한 세례명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ai의 답변이다.
견진성사때 세례명 변경가능하다는 말을 들어 가능한줄 알고 현재까지 지냈다.
교육을 받으러 갈때 아우구스티노라 하였다가 여호수아라 스스로 말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알아보지 않고 주변의 말만 듣고 변경 가능 한줄 안것이다.
신부님께 물어 보았다면 금방 알것을 오늘에야 ai에게 물어 보았다.
세례명이야 마음의 섬김이고 지향하는 것이기에 두분다 훌륭하여 변경되지 않아도
괜찮다. 지난 5년의 시간 여호수아로 변경하고 싶어진 것은 믿음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우구스티노 는 많이 사용하는 세례명이라 부담이 없다.
여호수아의 믿음을 좋아하는 것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는다.
지난 5년 신용정보기법의 한가운데에서 생할하였고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다만 내가 기법자체의 이해를 넘어서고 실체를 정확히 보게 되었다 일것이다.
타국들( 프랑스,일본등)을 둘러본 것이 결정적이다.
기대곳 없는 내가 늙은 노모에 의지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불편하였지만 그래도
노모의 지극한 사랑이 큰힘이 되었다.
예수님 성모님 부처님등을 부르지만 인간에게 자신의 어머니 만큼 소증한 분도
없는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게 해주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이웃을 사랑하여라 는 원망과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게 할수 있는 힘이였다.
이웃을 사랑하라 지만 사랑보다는 용서다.. 사랑을 하진 못한다 다만 용서는 할수 있다.
어차피 5년 내도록 한 기도가 내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이다.
지금도 마찮가지다.
다만 그때는 평범한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웃이 사람들을 죽이거나 미치게 한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그 살인의 행위자들이 나에게 한짓을 용서합니다. 이다.
직업, 나이, 성별이 다르다. 그러나 행위 자체는 살인의 행위에 가담한 것이다.
나는 죽지 않았으니 용서할수 있는 것이다.
청각과민증과 강박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만드는 지 모르고 "병" 정도로 생각한다.
층간소음으로 일으난 잔혹한 사건들이 청각과민이 부른 참극이라 하여도
이해는 해도 피부에 와 닺진 않을 것이다.
고통과 느낌이 끔직하고 잔혹한 만큼 반대급부의 표현도 극단적 살인 사건이다.
신용정보기법의 참여자들은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물론 참여자의 구분은 분명히 있다.
속마음의 진정한 의도는 하느님 만이 아실뿐이다.
모르고 한일도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정말 무서운 기도 이기도 한것 같다.
성당과 절등 어디든 신용정보기법이 만든 기가막힌 일들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절대성이 판단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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