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를 해석할때 징벌로 받아들이는가, 회개의 기회로 받아들이는가..
정통종교(기독교.불교등)는 회개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일반상식은 징벌로 받아들인다.
주 하느님의 섭리의 징벌로 볼것이가, 회개의 기회로 볼것인가..
부처님의 멸절의 법력인가, 참회의 기회인가..
일반상식의 가혹한 인과응보 인가...
무릎이 고장나 장애를 가지고 평생 살아야 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쓸어진다는
정말 가벼운 업보의 진실앞에 인간들에게 받아들이는 시간의 경과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지금 당장... 또는 두고두고 인가...에서 믿거나 말거나 가 되기도 한다..
신용정보기법의 참여자를 지명하였고 살인자들이라 하였고, 결과를 알고 있는 운영자는
살인자라 하였다.
따라다님(강박)과 소음( 청각과민)의 과대망적 상황을 알면서 또는 모르고 행하여 지는
모든 일들이 참여자들인가 아니면 지나는 행인이가는 본인들만이 아는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데 어떻게 알겠나...
다만 이미 신용정보기법의 대상자가 아닌대도 신용정보기법을 계속 유지시켜 억을한 피해자를
만든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쁜 의도가 숨겨져 사람들을 죽게 하거나 미치게 한 일들 지명하고 그 반대급부로 유무형의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행동한 것을 탓하고 지명한 것이다.
예로 들겠다. 야구르트아줌마 또는 차량의 풀빵장사 아저씨는 보통 성실한 사람들이라 말한다.
그런데 욕심에 눈이 멀어 신용정보기법의 참여자들로 활동하였다.
업보의 원리로 소중한 자식의 장래가 변한다면 어떻게 말할까..
분명 학원이라도 잘 보내려 참여한 것인데... 어렵고 고단한 일이다.
이런경우 신용정보기법의 참여자가 따져 봐야 할것은 상식적 기준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아전인수식으로 합리화 시키는 참여자들은 존재한다.
업보는 가혹하지만 회개나 참회의 길도 열려 있으니 이점 또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보가 아니라 업보다. 보복이 아니다. 이점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다.
참여자들의 과다가 아니라 내용이 어떻게 된 것인가 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작은 용서들은 축복받은 자만이 할수 있는 것이다.
기도의 진실 중 한가지는 차원이 다른 내용도 알게 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1000만명이 참여하여도 그 업보는 1000만개가 된다. 안타깝지만 진실이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