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원의 한시를 배우는 곳에 갔는데 동양사상의 명리학과 점성술에 대한 말도 듣게 된다.
죽은 영혼들과 인간세상의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음에 대하여 듣기도 한다.
죽은 영혼을 보고 듣기도 한다는 사람과 함께 한시를 배우기도 한다.
개인적 생각이다.
원한과 원망의 영혼을 보고 듣는 것보다 정말 무서운 것은 "업보"라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고 남겨진 원한을 보고 듣는 사람들이 무속인으로 그 원한을 닦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고 불교 천주교등 전통의 종교인들이 그 역활을 하기도 한다.
종교적 삶은 업보를 없애는 삶이고 업보를 빌고빌어 모두 없애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교나 천주교나 교리에 충실하고 오랜 세월 기도에 전념한 분들이 존재하며 그분들의 영혼은
도교의 신선과 같은 영혼을 가졌고 죽은 후에도 그영혼 그대로 간직하여 돌아가시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강한 업보의 섭리 속에 있다. ( 난 천주교 교인이다. 오해않기를 )
신의 섭리는 강력하고 인간의 질문 내용을 뛰어넘는다. 그 사실은 진실이다.
동약철학의 한계는 통계의 한계이고, 무속의 한계는 귀신의 한계라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이세상에 원한과 원망이 강하면 이승에 남겨진 것이라 본다.
나는 이승에 남겨진것을 홀로그램이라 표현한다. 본체의 영혼은 저승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남겨진 홀로그램을 무속인 누구든 능력이 있으면 보고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업보는 신의 섭리다. 영어로는 카르마, 그리고 성경 보다는 탈무드에 신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음을 안다. 성경학자의 고상함이나 어려운 표현은 생각을 잠시 접는다.
자기 자신에게 "착하게 살자. 타인들에게 인정을 베풀자." 는 진실이다.
평생을 살아도 갈등하며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글을 쓰며.. 세상에는 기인이사가 많구나.. 이다.
한시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나, 나의 옆자리 학생이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 또한
이세상을 즐기며 살기에 충분하다.
기인이사를 만나 것은 일상속 특별한 날과 같다.
오늘 오전 신학원 수녀원 성모상 앞에서 늦은봄 쑥을 케는 수녀님들은 풀밭의 새싹 같았다.
수도를 잘하시어 수녀님들이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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