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1차 진주성 전투는 조선측이 대승을 거둡니다.
하지만 2차 진주성 전투는 일본군의 압도적 우세에 결국 조선이 패하게 됩니다.
원래 2차 전투는 1차 전투의 설욕을 위해 시작된 것이었는데,
마침 당시 명-일본간 강화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고 일본 내부에서도 극력 반대하였으나
가토가 강화협상 때문에 일본군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데도 조선군이 자꾸 일본군을 공격하니 진주성을 상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히데요시가 과거 1차 전투의 복수를 위해 이에 동의함으로써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에 부정적이었던 고니시는 직접 이 군사기밀을 급히 명나라를 통해 미리 조선에 알리고, 이번 공격은 대규모이므로 조선백성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조선측에서 잠시만 성을 비워달라, 그러면 일본군도 성이 빈 것을 보고 즉시 물러가겠다고 약속하면서
이것은 히데요시의 고집으로 부득이 진행하는 것이니 백성들의 피해를 막으라고 권하게 됩니다.. @@
이에 심유경은 협상 중에 조선을 공격하면 응징하겠다고 일본측에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조선측에는 고니시가 직접 자신에게 한 말이니 믿을 수 있고, 진주성에 있는 장수들로 하여금 잠시만 성을 비우게 하도록 요청하게 됩니다.
조선의 의논은 둘로 나뉘었는데, 권율과 곽재우 등은 적의 기세가 대단하니 전략적으로 진주성에서 물러나 병력을 보전하자고 주장하였고,
김천일 등은 진주성이 무너지면 호남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지켜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구원을 부탁하면서도 스스로는 진주성에 지원병을 보내지도, 그렇다고 진주 군민에게 피신하라고도 하지 않아
진주성에서 막아야 한다는 김천일 등은 병력을 진주성으로 진주시켰고, 전략적 후퇴 후 호남에서 막아야 한다는 권율 등은 진주성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게 됩니다.
한편 다테 마사무네, 가토, 고니시 등 비중 있는 장수들이 직접 참전한 9만 대군이 실제로 진주성에 집결, 공격을 개시하자
조선측의 구원 요청을 받은 명나라 장수와 의병이 진주성을 구하기 위해 출병하였으나 일본군에 의해 모두 저지되었고
9일간의 접전 끝에 결국 압도적 우위의 일본군이 진주성을 함락, 김천일, 최경희 같은 지휘관들과 황진, 장윤, 이종인 같은 명장들도 모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후 일본군은 여세를 몰아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 광양, 순천까지 휩쓸었지만, 어렵게 차지한 진주성을 점령하지 않고 그냥 물러가버렸다고 하네요..
이미 대규모 일본군이 진주성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결사항전과 정면대결로 진주성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일단 후퇴해 결전을 피하고 지연전과 소모전으로 상대할 것이냐
후퇴는 없다는 히틀러처럼 끝까지 성을 사수해야 하느냐 아니면 관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성을 비우고 일본군이 무혈입성하도록 해야 하느냐
일본의 전력을 소진시켜 피로스 승리로 만든 고귀한 희생인가 아니면 2차대전의 스탈린그라드, 태평양전쟁의 오키나와처럼 옥쇄논리에 매몰된 무의미한 희생인가
애국자와 겁쟁이를 구분한 전투인가 아니면 무모함과 전략전술을 구분한 전투인가
많은 시사점과 고민할 점을 주는 전투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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