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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과거에 미국이 영국을 지배했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이 유럽에서 온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미국인은 자유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스스로 왔던 사람들이므로 영국인에 열등감이 없다. 일본인들도 자신들이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왜 일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지 못할까?
야마토임나설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논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은 거짓이라 탄로날 것이 뻔한 논리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원래 우리가 살던 땅인데 전쟁에 져서 쫓겨났으므로 다시 되찾겠다고 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고 명분이 있다. 조선인을 지배하기 위한 통치수단으로 보기도 어렵다. 여기서도 원래 조선 사람들이 쫓겨났다가 다시 조선으로 와서 통치한다고 하는 것이 통치수단으로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일본서기」를 제작할 당시에는 망한 나라를 이어받은 왕조라고 하면 하늘로부터의 정통성을 인정 받은 왕조라 주장하기 어려워, 당시의 지적 환경에선 가공 역사를 만드는 것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과학이 되었다. 일본인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인정해도, 대륙과 한반도와 열도의 백제가 망해서 열도에 일본국이라는 새 나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현재의 문화적 환경에서 그것이 일본에 해가 될 일은 전혀 없다. 현대에선, 정상적이고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구성된 사회에서 역사는 과거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되었다.
야마토임나설은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對韓 열등감의 산물이지, 침략의 명분이나 조선 통치의 수단이 아니었다. 일인들은 열국의 경쟁에서 패배한 백제가 그들의 조상이고, 백제를 이긴 신라가 조선이라는 것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닌,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열등함으로 인식하였다. 그들의 고대사 날조는 일본인이 과거에도 조선인보다는 잘났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극심한 열등감 때문에 지금 뿐만 아니라 과거에서까지 더 우월하고 싶은 것이다. 야마토임나설은 일본인의 집단열등감이 표출된 사회심리적 현상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열등감을 심어준 사실은 없다. 일본인의 집단적 열등감은 일본 사회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일본사회는 병들어 있다. 일본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도덕이 없으니 힘에만 의지하여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하게 되었다.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다 보니 신라에게 쫓겨난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자신들을 쫓아낸 신라 즉 한국은 무서운 나라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 마음 속에 가득 찬 한국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가공의 야마토왜 왕조를 만들어 상상 속에서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일인들의 혐한은 한국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고 일상 속의 야마토임나설이다.
일제유사사학은 조상을 부정하려 한다. 조상의 부정은 자기부정이다. 극심한 열등감은 자기를 부정하게 한다. 일제유사사학의 날조는 일본의 뿌리가 한국임을 숨기기 위한 정신이상집단의 처절한 몸부림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할 수 없는 가련한 이들의 안타까운 발작이다.
『후한서』는 「동이열전」 서문에서 “예기 왕제편에 이르기를 ‘동방을 이(夷)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이(夷)는 저(?)이다. 어질어서 만물이 땅에 뿌리내려 태어나도록 키우는 것을 좋아함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변화가 도로써 제어되니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게 되었다.”라고 한다. 이는 조선인들이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중국인들이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홍익인간을 지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소홀히 하면 일본인들처럼 될 것이다. 일본인들이 조선인임을 자각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복귀하면 야마토임나설은 자연스레 없어진다. 일제유사사학의 고대사날조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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