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의 명상록2 (영문)
옮긴이 윤경남
1945년 10월 20일, 윤치호
1. 친일파로 비난을 받고 배척을 당한 사람들 중에 능력있고 쓸모있는 사람들 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자기만이 옳다고 우겨대는 비방자들은 누구일까요? 비방하는 그 친구들 가운데 대부분이 1945년 8월 15일 정오까지만 해도 동쪽을 향해 절하고, 일본신민 맹세를 되뇌이며, 모든 학교에서, 교회에서, 공장에서, 정부와 큰 사업가 사무실에서, 백화점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장 등의 공공장소라면 어디서나 덴노(천황)를 위해서 반자이(만세)를 외쳐댔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개명을 했습니다.
어째서 그 조선백성들은 모두 친일파와 똑 같은 행동을 했을까요? 그들은 단지 친일을 하지않을 수 없었고, 아니면 감옥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먼저 돌을 던지려고 하는 것 일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불미스런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위해 사람들의 눈 속에 먼지를 털어넣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당이나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려고 일부러 공포와 근심에 쌓인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친일파라는 치욕을 주려는 참으로 터무니없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제 치하의 34년 동안 조선의 위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조선이 독립적인 왕국이었나요? 아니지요. 우리는 단지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세계 열강들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사람은 좋건 싫건 일본인 이었습니다. 일본의 신민으로서, ‘조선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들에게 일본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말고 어떤 대안이 가능했을까요? 우리의 아들들이 전쟁터로, 딸들은 공장으로 징집되었을 때, 군국주의자들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일본의 신민으로서 한 일을 가지고 비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않는 일입니다.
추방된 조선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다방면에 걸쳐서 앞서 간 선배들로부터 다양한 효율성과 규율을 배웠습니다. 각 지역의 상황과 조선인 대중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지식과 재능은 조선의 새 정부 지도자들에게 크게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
2. 그런데, 마치 그들이 자신의 힘과 용맹성으로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조선을 구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어딜가나 인위적인 허세를 부리고 다니는 자칭 구세주들의 꼴이란 참으로 가관입니다. 그자들은 아둔하거나 수치심이 없는, 아니 그 둘 다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조선의 자유가 달나라 속에 살고 있는 사람만큼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이른바 그 ‘해방’이란 우리에게 단지 동맹으로 맺어진 연합군의 승리의 한 부분으로 우리에게 온 것 뿐입니다. 만일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저 허세와 자만에 찬 자칭 '애국자'들은 어떤 사람이 큰 지팡이로 일본을 내쫓을 때까지 계속해서 동방요배를 하고 황국신민선서를 읊었을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허세와 자만에 찬 저 '애국자'들이 일본을 몰아낸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만일에 어떤 이변이 일어나서 일본이 조선을또 다시 그들의 손아귀에 넣는다면, 그 허세부리는 ‘애국지사’들이 일본을 몰아낼까요?
이 허풍장이들은 우화에 나오는 어리석은 파리처럼 이야기하고 다닐겁니다. 달리는 마차 위에 내려앉은 파리 한 마리가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 마차는 내 힘으로 바퀴가 굴러가고 있다, 라고요.
우리는 ‘해방과 자유라는 선물’을 준 그 행운의 별들을 솔직하게 시인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잃었던 보석을 되찾은 ‘은총의 선물’을 받았음으로, 다시는 그것을 잃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소한 개인적 야심과 당파적인 음모와 지역간의 증오심일랑 모두 묻어두고,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익을 위해 다 함께 협력하여 이 조국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민중들의 무지와 당파 간의 불화속에서는 우리 조선의 미래를 낙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분열되지 말고 힘을 합쳐 나가야 합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