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인수위 검증] 당선자 '외교 책사' 연구윤리 위반 의혹...보고서 베껴 학술지 3곳 중복 투고
박종화
2022년 03월 28일 10시 00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외교·안보 분과 간사에 임명된 김성한 고려대 교수가 이전 자신의 연구보고서 내용을 베끼고 쪼개 논문 3개를 만들어 학술지 3곳에 동시 투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논문에는 연구보고서를 인용했다고 출처를 밝히지 않았고, 참고문헌 표기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연구 내용을 적절한 인용·출처 없이 학술지에 다시 출판하는 행위를 '부당한 논문 중복게재'라고 한다. 남의 자료를 베끼는 표절과 마찬가지로 연구 부정행위이다. 또한, 김 교수는 유사한 내용의 논문을 두 곳 이상의 학술지에 투고해 '학술지 복수 기고 금지' 규정을 어겼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김 교수는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양쪽 논문을 전적으로 동일하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MB 정부에 이어 윤석열 인수위에도 '외교 책사'로 발탁
김성한 교수는 국제정치 분야 전문가다.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을 거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제2차관(2012∼2013년)을 지냈고, 윤석열 인수위에서 또다시 외교·안보 분과 간사에 임명됐다
김 교수는 윤석열 당선자와 각별하다.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윤 당선자의 ‘외교 책사’로 불린다. 윤 당선자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선대위 외교·안보정책본부장을 맡았다.
인수위 합류 사연을 묻는 말에, 김 교수는 “윤석열 후보와 오래된 관계”이고, “가까운 사람을 찾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를 찾게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 2022년 2월 15일)
연구보고서 베끼고 짜깁기해 '재구성한' 논문 3개, 학술지 중복 투고
문제가 되는 김성한 교수의 연구보고서와 논문 3개는 2003년 작성됐다. 당시 김 교수는 외교안보연구원에 재직 중이었다.
먼저 김 교수는 2003년 8월, 한국전략문제연구소에서 연구보고서『한반도 군비통제 관련 한미간 협력방안』을 발간한다. 이 연구보고서는 121쪽 분량이다. 머리말과 맺음말을 포함해 총 5개 장으로 나뉜다. 이후 김 교수는 각 장의 내용을 베끼고 짜깁기해 엇비슷한 내용의 논문 3개를 재구성한다.
즉, 연구보고서 3장을 베껴 첫 번째 논문『미국의 세계전략과 신보수주의의 미래』를 작성한다. 이어 연구보고서 3장과 4장의 일부 내용을 옮겨와 두 번째 논문『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전략』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연구보고서 머리말, 4장, 맺음말 등을 그대로 가져와『한반도 군비통제와 한미협력』이라는 세 번째 논문을 구성했다.
하나의 연구보고서를 쪼개고 짜깁기해 3개의 논문을 만들다 보니, 논문마다 연구 보고서의 각주는 물론, 소제목, 본문, 그림, 도표까지 같다.
3개의 논문도 상당 부분 같은 내용이 뒤섞여 있다. 17쪽 분량의『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전략』논문의 경우, 약 90%의 내용이 또 다른 논문『미국의 세계전략과 신보수주의의 미래』과 일치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3개 논문 모두 연구보고서를 인용했다고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 참고문헌에도 연구보고서를 적지 않았다. 이렇게 인용과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기에, 연구보고서와 논문이 별개의 독자적 연구처럼 보이게 됐다.
그리고 김 교수는 2003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각각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발행 학술지 <국제관계연구>, 신아시아연구소 발행 학술지 <신아세아>,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발행 학술지 <전략연구>에 논문을 투고했고 모두 게재됐다.
논문이 실린 세 개 학술지는 모두 KCI 등재지나 등재후보지이다. KCI 등재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된다는 것으로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연구보고서에 등장하는 "본 보고서" 문구, 그대로 논문으로 베껴
그런데, 김 교수는 연구보고서를 베껴 논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김 교수가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이 발행하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30쪽을 보면, “따라서 본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라고 시작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연구보고서에 나오는 “따라서 본 보고서는...”라는 문장을 미처 수정하지 못한 채, 논문으로 옮겨온 것이다. 학자들이 논문을 쓸 땐 “본 논문”, “이 논문”, “본고”, 또는 “본 연구”라고 언급하는 게 상식이다.
'논문 종복게재', '학술지 복수 기고 금지' 규정 위반 의혹
김 교수의 경우처럼, 자신의 연구 자료라도 '적절하고 충분하게' 인용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고 학술지에 다시 발표하는 행위를 '부당한 논문 중복게재'로 규정할 수 있다. 표절과 마찬가지로 연구 부정행위이다.
또 학계에선 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두 곳 이상의 학술지에 중복해 기고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지하는데, 김 교수가 이 같은 학술지 투고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의 논문 투고 규정에는 “기고 논문은 다른 학술지에 게재되지 않았으며, 게재될 예정이 없는 창작 논문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김 교수가 2003년 당시 논문을 투고했던 한 학술지 관계자는 “문제 논문을 살펴보겠다. (중복게재) 문제가 (확인)되면 내부 회의를 통해 규정에 맞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논문 중복게재로 최종 판명될 경우, 대부분의 학술지는 논문을 삭제되고, 5년간 논문 투고를 금지한다.
“장관 후보자도 아닌데, 이런 검증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뉴스타파는 김성한 교수에게 연락해 자신의 연구보고서를 여러 논문으로 만들어 복수의 학술지에 투고한 경위를 물었다. 또 인용이나 출처 표기를 따로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는지 해명을 요청했다.
김 교수는 해당 논문의 연구 윤리 위반 의혹을 부인했다. 김 교수는 이메일 답변에서 “20년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양쪽 논문을 전적으로 동일하게 쓰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또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인수위원일 뿐인데, 이런 검증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며 이번 검증 취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뉴스타파는 김 교수에게 다시 연락해 2003년 외교안보연구원 재직시절, 앞서 지적한 연구보고서와 세 개 논문을 모두 연구 실적으로 올렸는지, 또 4년 뒤 2007년 고려대 교수로 임용될 때도 실적으로 제출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도가 나가는 3월 28일 현재까지 김 교수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통령직 인수위는 관련 법률에 따라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 새 정부의 기조와 운영의 밑그림을 짜는 공적 업무를 수행한다. 고위공직자에 따르는 검증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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