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해야 대화를 주고받을 텐데.. 이건 난감 한거야. 한 20분 걸었을까? 한국의 아파트 보다는 작은 건물인데, 그 건물 안으로 그녀는 나를 팔을 잡고 들어오라는데.. 겁이난 건지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컴~인” 거리며, 양팔을 벌려 웃더라고. 난 그녀의 그 해맑은 미소를 믿기로 했어. 낯선 여인의 집에 방문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며 뻘쭘하게 앉지도 서있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녀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니 씻으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 마치 한국말로 “샤워해~~” 라고 말하듯이.. 근 석 달을 찝찝함을 느끼면서, 바닷물로 씻어야했던 나는, 오랜만에 뽀드득거리는 샤워를 하고나니 너무 너무 좋더라고.. 실로 감격에 겨울만큼. 깨끗하게 씻고 나오니, 그녀가 궁금하기 시작해졌지. 용기를 내서 물어봤어 그녀에게. “왓쳐네임~~?” 그녀는 짧게 웃으면서 “이사벨라” .그때부터 난 그녀를 “헤이~벨라” 라고 불렀지. 문득, 궁금해 지는 게 이 여자가 몸을 파는 매춘부인지, 아님 숙소를 제공하는 숙박업자인지 말이 통해야 물어라도 볼 텐데, 당체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 죽겠더라고. 그래도 그녀와 난 배에서 밀린 빨래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가서 빨래를 하고, 그녀와 함께 아르헨티나 어느 소도시의 거리를 구경하러 다녔지. 신기했던 게, 거기도 수박이 있더라고. 내가 수박을 참 좋아하거든 오랜만에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사서 그녀 집으로 가서 밥도 해먹고, 즐겁게 지냈지만 너무도 아쉬운 건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는 점이었지. 그녀의 그 맑은 미소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참 답답하기만 하더라고.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 가는 거 같아. 안타깝게도 우리배가 수리가 다 되고, 이제 또,다시 바다로 나갈 시간이 다가왔어. 나에게 행복한 일주일을 선사해준 그녀에게, 난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해주고 싶었고, 배로 가서 항해사한테, 부탁을 했지. 오백달러와, 양주 두병, 그리고 몇 보루의 담배.. 그리고 내가 차고 있던 목걸이. 행복을 선물했던 그녀에게 보잘것없는 적은 가치이나,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이 그 것 말고는 없더라고 배가 떠나는 날 그녀는 친히 항구에까지 나와서 나에게 그 거부하기 힘든 미소로 작별인사를 건냈고, 나도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어. “굿바이.. 이사벨라…” 꽁치잡이 또다시 우린 무더위와 거친 노동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오징어를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오징어에게 분노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지. 그렇게 오징어 성어기가 끝났고 우린 꽁치를 잡으러 북태평양으로 배를 돌렸어 한달반을 지루하게 달렸으니 또 그만큼 지루하게 가야겠지. 아 지겨워. 올 때 한달 반이 걸렸으니, 갈 때도 그만큼 걸리겠다는 건 이미 예상하던 바였지만, 그래도 참 지루하던 시간이었어.. 다행인건 북태평양은 그다지 덥지 않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 항해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를 긴장시키기 충분했지. “꽁치 잡는 순간부터 죽었다고 생각해라..” “오징어 잡을 때와 꽁치를 잡을 때는 시스템이 완전 달라. 아무리 바빠도 오징어를 잡을 때는 잠은 꼬박꼬박 잤었지만, 꽁치를 잡을 땐 정말 초죽음 직전까지 도달해. “전원공격. 전원수비” 이 한마디로 정의 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
고기배의 목적은 고기를 잡는거고 고기를 잡기위해서는 잠을 잘 수가 없어, 적어도 꽁치 배는 그래. 간략하게 꽁치를 잡는 방식을 설명하자면 해가 지고난 후 어두운 망망대해를 배의 선수와 포드/스타포드(배의 좌우현)에 달린 대형 서치라이트로 바다를 비추면서 천천히 미속으로 전진을 하지. 그럼 그 불빛에 반응하는 꽁치가 바다 위를 솟구쳐. 이 모습이 사실 장관이야, 그럼 배를 정지 시킨후, 천천히 서치라이트를 이용해서 꽁치를 배 근처로 유인해오지. 어느 정도 배에 꽁치가 몰렸다 싶으면, 배의 우현에서 대형 그물을 바다에 넓게 퍼트리고, 꽁치를 가두는거야. 그리고는 그물을 조여서 꽁치를 그물 안에 던지면, 피시펌프를 통해서 쭉 빨아들여 그럼, 고기는 데끼(Deck : 갑판)로 바닷물은 다시 바다로. 그렇게 한번 그물에 잡히는 꽁치가 대략 40톤 이상이지. 원양어선은 원근해어선과 달라서 잡은고기 는 바로 배에서 처리를 해야 해, 잡은 꽁치를 10kg의 종이박스에 보기 좋게 담아야하지. 오징어 때와 마찬가지로 [다대]해서 [급냉] 을 거쳐 어창으로 가는 과정은 똑같아. 꽁치 50톤이면 10키로 박스로 5천개야. 그걸 30명 정도의 선원들이 처리를 하는 거지 아침 해 뜨기전에 꽁치를 뜨면, 그걸 다 처리하면 이미 해가 져있어.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야. 인간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얼마나 위대해 지는지 난 거기에 몸으로 체험했어. 영하 50도의 급냉 창고에 달랑 고무 장갑끼고 들어가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일한다면, 믿어져? 24시간 단 1분도 못자면서, 3~4일을 내리 일한다면, 과연 상상이 갈까? 로프에 몸을 묶고, 10미터가 넘는 파도를 맞서면서, 그물을 당기는 그 치열한 삶의 현장을 누가 본적이 있을까? 담배를 하루에 서너갑씩 피워대고, 커피를 사발로 마셔도, 그 쏟아지는 잠을 이겨 내는 게 정말 고통이야. 다들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꽁치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잠을 떨쳐내면서 꽁치를 잡아야 하는 사실이 슬픈 거지. 그렇기 때문에, 뱃놈들은 자연히 거칠어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야.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나는 상당히 동의해, 물론 그 환경을 선택 하는 건 사람이긴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뱃사람 하면 가지는 선입견이 ‘화끈하고 화통하고 사내다운..’ 뭐 이런 걸 텐데 내 경험에 의하면 저건 다 환상에 불과해. 육지에서야 그렇게 보일 수 도 있지만, 적어도 바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 조금이라도 내 몸 편하기 위해서, 남의 눈치를 보게되고, 이간질을 하며, 거짓말까지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고. 그러다보면 싸움은 필연적으로 발생하지. 같이 배를 탔던 형님 중에, 좀 특이한 사람이 있었어. 이름은 지금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음 배를 탈 때 만해도, 그 형님의 인상은 참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더라고, 그게 본성인지 극한의 상황에서 나온 자기방어기제 인지는 지금도 의문이야. 결국 유난히 농땡이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그 모습에 화가 난 햇또는 작업도중 그 형님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서로 칼과 낫을 쥐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대치한 상황까지 간 거야. 근데, 신기한건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정말 그 누구하나. 몇 개월을 그 작은 공간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이,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낸 그런 사람들이 싫어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니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사실 나 역시 침묵을 지키긴 했어. 싸움은 햇또의 사과로 마무리 됐지만, 그렇다고 햇또가 선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건 아니야. 강한 자에게 참고, 약한 자를 눌러버리는 그 인간 본연의 가장 더러운 모습이 그 안에서도 있던 거지. 그런 형님들은 모습이 한동안 날 우울하게 만들었지. 그 이후 꽤 오래 난 말을 잘 하질 않았어. 8월~10월 북태평양의 꽁치를 잡는 성어기야. 이 석 달 안에 최대한 많은 꽁치를 잡아야 되지. 이 석 달 동안은 정말 씻는 시간마저 아까워. 얼마큼 빠르게 잡은 고기를 처리 하냐에 따라서 어장을 이동하는 그 잠깐 시간에 잠을 자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지. 선장이 “잠깐 눈 좀 붙여라” 라는 말이 떨어지면, 씻고 옷 갈아입고, 이런거 없어. 그 자리에서 바로 누어서 자는 거야. 누군 그냥 그물위에서 처자고, 누군 종이박스를 베개 삼아 자고. 또 누군, 바닷물이 흥건하게 젖어있는 갑판위에 그냥 쓰러져 자고. 온몸에 꽁치비늘이 가득하고 토할 거 같은 비린내가 온몸에 진동하지만, 잠을 자야하는 본능을 그 따위 걸로 막을 수가 없어. 가끔 작업을 하기 힘든 폭풍우가 오면, 피항을 가지, 일본열도의 제일 가까운 3해리(약 5.5km지점) 까지 피항을 가는데, 눈 좋은 사람은 저 멀리 지나가는 차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거든. 그럼 또 미치는 거야. 육지 가고 싶어서. 꽁치를 잡을 땐 오로지 딱 하나만 생각해, 빨리 처리하고 자야..제발 좀 자자!!근데, 여유가 생기면 생각이 많아져. 그 때 생긴 버릇인지 모르 겠지만, 그 후 난 고민이 생기면 미친듯이 일을 해, 그래야 잡생각이 없어지더라고.
근데, 정말 희한하게 엊그제까지 그 많던 꽁치가 11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했어. 마치, 마술사가 손안에서 카드를 없애듯이. 정말 참 신비롭지 자연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 저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선수에서 바라보면,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되더라. 배를 타면서, 종종 선수에 혼자서서 (마치 타이타닉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보곤했는 데 참, 자연의 위대함이란 그 어떤 수식어도 붙이기 힘들만큼 아름답고 장엄하며, 경이로워. 가끔은. 정말 아주 가끔은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너무도 힘들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그 바다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참 많을 일들을 겪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실망하며, 한편으로는 이 엄청난 과정을 겪어 내온 내가 기특하기도 했어. 배를 한국으로 돌리고, 한국으로 오는 일주일동안 내가 출항했던 순간부터 그때까지의 모든 일들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리와인드 시키면서, 곱씹어 봤지. 누군가는 나에게, 어린놈이 참 기특하네.. 하면서 칭찬 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대한 환상과 꿈이 가득했던 나에게 인생의 선배들이 보여준 인간의 본성은 참 실망스러웠어. 앞으로 한참을 더 살아가야하는 청년에게는 그 일 년의 경험들이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거지.. 살아오면서, 후회라는 걸 별로 해보지 않았지만, 그 때 그 선택은 아직도 후회로 남아있지. 어차피 나쁜 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 게 세상사라지만, 그게 내 선택으로 경험했닫는 게 여전히 후회로 남아. 누군가에겐 특이하고, 재미있고,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들리겠지만. 무사히 배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와 같이 배를 탔던 형님들 중 한분은 아직까지 소식을 전하면서 아주 가끔 만나면, 소주잔 기울이며, 그 때 그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막상 만나면, 누구도 먼저 그 애기를 선뜻 꺼내지 않아. 아마 서로 감정은 비슷했던 모양이야. 여기까지야. 읽어줘서 고마워. 10년전 기준으로 1년에 7천만원이니까 지금돈으로 따지면 1억 5천쯤 벌어온듯…
교훈
원양어선 타는 거 아니다.
바닷 속의 고기는 돈이 아니야, 그걸 잡아 올려야 돈이지.
바닷속의 꽁치를 모조리 잡을 것같이 하루하루 꽁치를 잡다보니, 어느새 11월이 다가온 거야.
괜히 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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