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들이 묵었던 왜관이 있는데 부산 구도심쪽인 동래구, 초량에 있었습니다. 여기가 임진왜란 때 왜국의 간자들이 조선의 정보를 모아서 일본으로 보내던 전진기지 역할을 했었습니다.
부산쪽에는 덕천동에 왜군이 임진왜란 때 구포쪽에 세운 왜성이 있고 범일동에는 부산포왜성이 있으며 동래에도 왜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기장에 죽성리왜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부산포로 왜군들이 들어왔습니다. 도망 갈 때도 부산쪽을 통해서 왜로 도망 갔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에서 들어오는 관문이 돼 주었고 경부선을 이용해서 경성으로 빠르게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인천, 군산, 목포와 함께 수탈품을 일본으로 보내는 항구였습니다. 결국 일제가 패망하고 이땅에 들어와 있던 왜인들이 일본으로 도망갈 때도 부산항에서 집결하여 도망갔습니다.
박정희가 일본과 단교 됐던 것을 다시 수교하면서 일본인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곳이 부산이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때는 일본에 와이프를 놔두고 부산에 첩을 만들어 두집살림하던 일본인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국인 첩을 현지처라고 불렀었습니다.
80년대 일본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기에 부산을 통해서 야금야금 들어와서 전국으로 확산 됐었습니다. 1981년 자니스그룹의 콘도 마사히코라는 가수가 부른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라는 노래는 부산으로 들어와서 전국으로 퍼진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전국의 나이트클럽에서 안나오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가라오케나 파칭코 등 일본문화의 관문이 돼 준 것이 부산입니다.
위치적으로 일본과 가깝다보니 가장 많은 공략을 당한 듯 싶습니다. 심지어 일본 후쿠시마에서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고 원전이 폭발 했을 때 일본인들이 부산에 부동산을 사들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런 ㅆㄹㄱ 글 쓸거면 최소한 검색이라도 한번 해보고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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